서가에 꽂힌 책
엄밀히 말하면 이 책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책꽂이에 꽂힌 책" 이야기이다. 지은이가 밝혔듯이 " 무슨 이유에서인지 쭉 늘어선 책들을 떠받치고 있는 선반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되어"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책과 책꽂이 진화의 얘기들을 "테크놀로지 진화의 예"로 불가분의 관계로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물론 주로 서양의 책 이야기기이다).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사용된 두루마리, 기독교 시대 초기의 코덱스, 오늘날 책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세 수도원의 필사본, 근대로 들어서면서 나타나는 아직은 제본되지 않은 인쇄본들의 출현, 그리고 드디어 오늘날의 책의 형태들. 지은이는 시대에 따른 책의 변화를 책 자체가 아닌 그 책을 담는 책꽂이의 변화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뭐가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읽다 보면 새로이 알게 되는 여러가지 사실들. 그리고 여전히 불변의 진리(동서고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인 책을 담을 책꽂이는 항상 부족하다는 사실. 책장을 늘려도 늘려도 모자라기만 하는 "시지푸스의 형벌"을 겪는게 나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받으면서, 그리고 중간중간 맞다맞다 하면서 재미있게 읽어 내려가지만 그 내용이 너무나도 자세히 많아 나중엔 지겨움도 주지만 그래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손에 쥐게 되는 책이다.
물론, 내가 이 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책 끝에 부록으로 나온 "서가의 책 정리"때문이다. 저자의 성 순서에 따라, 제목 순서에 따라, 주제에 따라, 크기 순서에 따라,... 모두가 한번씩은 시도해 보는 책 정리 방법이 나와 있다. 사실 책 정리에 정답은 없는 법. 어느날 맘잡고 책장 정리에 나섰다가도 책장의 먼지만 털고(사실 그것만 해도 가치있는 일이긴 하다) 도로 원래대로 꽂아놓는 일이 다반사인 나로서는 주제에 따라 책을 정리하길 좋아한다는 지은이가 디자인을 다루는 책을 한칸, 그리고 전공인 다리에 관한 책을 한칸, 이렇게 정해놓고는 과연 다리의 디자인에 관한 책은 어디다 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대목에서는 웃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책들도 처음 이사와서 지은이에 따라(시오노 나나미, 해리포터 시리즈, S.E.P과 D.S), 주제에 따라(전공 서적, 컴퓨터 프로그램, 한글 및 영어 로맨스 소설, 동물 관련, 여행 관련), 책의 모양에 따라(하드 커버들이 한칸), 만화책은 따로,,, 이러면서 야심차게 정리를 시작했으나 S.E.P의 하드 커버는 지은이 칸에, 다른 작가들의 하드 커버는 영어 로맨스 소설칸에 이러면서 역시나 혼용해서 정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데나! 빈자리에 새로운 책들을 넣어 놓다가 급기야 책꽂이 위로 올라들가는.. 정말로 시지푸스의 형벌은 끝나지 않는다..
by anita | 2007/02/11 20:16 | 이런 책, 저런 책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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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07/02/11 20:36
밸리 타고 왔다가 책 이야기가 좋아서 링크하게 되었네요. 괜찮죠? ^^
Commented by anita at 2007/02/12 21:42
그럼요, 달을향한 사다리님! 책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을 보는건 항상 즐겁습니다. 동지 의식을 느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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