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이런 종류의 책들이 자꾸 나오는 이유중의 하나는 간추린 책 내용, 또는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원래의 책(주로 고전들이 많으니까)을 읽어 보고 싶다고 느끼게끔 하려는 고도의 술책이 아닐까...라고 혼자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런데도 마치 동물, 특히 개에 관한 이야기처럼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나올 때마다 홀라당 집어드는 건 그 술책에 확실히 넘어가 주는 거다, 그것도 자청해서. 

영문학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저자, 우연히 친구의 셋방 문간 책꽂이 한편에 꽂혀 있던 낡은 찰스 디킨스 전집에 한눈에 반해 버린다. 그러니 다음날, 동네서점으로 한 걸음에 달려가 친구거보다 더 멋있는 전집을 끌고 와서 제일 좋은 자리에 꽂아 놓은 건 당연한 얘기. 그 몇주 동안 한페이지도 읽지 않았지만 보기만 해도 흥이 절로 나오던 것도 잠시, 여자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그 전집을 다른 곳에 판다, 원래 샀던 가격보다 두배로. 그일이 발단이 되어 결국 영문학 강사자리를 뛰쳐 나와 희귀본 거래업자로 나서게 되었다. 

이렇게 저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이 책은 저자의 전공이었고 사랑하는 주제이면서 주 사업분야였던 현대 작품들의 뒷얘기, 초판본부터 시작해서 어디로 흘러갔고, 특히나 사람들이 제일 흥미있어 하는 부분, "금액이 얼마까지 올라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 놓고 있다. 

배포맞는 사나이들끼리 보드카를 연신 마시며 손에 쥔 다음날 아침, 얼떨결에 팔아버리고는 수표와 두통과 너무 싸게 판게 아닐까 하는 쓰라린 후회를 남긴 [롤리타]. 고집이 세고 신랄했던 반면 돈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말년의 골딩 이야기가 나오는 [파리대왕],.. 20세기 초의 퇴폐적이고 어딘가 절박한 느낌이 묻어 나오는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한창 소련이 나찌를 물리치는 우군이었을 때 나온 [동물농장],.. '냉기뿐인 셋방'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라는 [해리포터와 현자의 돌], 최초 소유자인 아이에게서 버림받은 덕에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72,000를 호가하는 [피터 래빗 이야기],..

단순히 손익 계산을 따지는 사업가의 이야기만도 아니고, 자신의 사들인 책과의 사랑에 흠뻑 빠져서 모든 걸 팽개치고 그 사랑에 올인(즉, 영원히 소유)하는 것도 아닌 채, 20세기부터 지금까지 나왔던 책들 중에서 20개의 책을 골라서 그 뒷이야기들을 들려 준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서 날카로운 문학 비평과 함께, 때로는 장사꾼의 셈법으로. 

이 20개의 책중 몇개나 끝까지 읽었나 잠시 반성해 보기도 하다가 "출간된 이래 엄숙함을 자랑하는 대학 교수나 문헌학자들 치고 이 작품을 칭송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사람도 손으로 꼽기 힘들었다"라는, "독자를 지치게 만든다"는, 저자 역시 책장을 열지 않고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율리시즈]에 이르면 거봐~하면서 나 혼자 위안을 삼게 된다.
by anita | 2008/04/28 20:37 | 이런 책, 저런 책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anitahn.egloos.com/tb/1864529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08/04/30 10:56
책에 대한 책을 외면하는 건 정말 불가능하죠...희귀본 거래업자라니,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책사냥꾼'들이 떠오르네요^^
Commented by anita at 2008/04/30 20:30
그러고 보니 계속 아껴두고 있는 [꿈꾸는...]이 자꾸 멀리서 손짓을 하네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