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그림책
원래 책을 참 빨리 읽는다(물론 성격도 급하긴 하다). 특히나 재미있는 책은 그 끝이 너무나 궁금해서 아무리 천천히 읽으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책장이 막 넘어간다. 남들처럼 천천히 읽으면서 한번에 느끼는 대신 후딱 읽고 나중에 또 읽고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러니 천천히 읽게 되는 책들, 진도가 안 나가는 책들은 자연히 피하게 되는데 이 책은 사다리님이 아니었으면 절대 못 보았을 책이다.


늘상 하드커버로 된 책을 읽을 때의 버릇으로 파스텔 톤의 겉표지를 벗기고 나자 푸른 바탕에 단순한 그림이 나온다. 책속에서 웬 그림자 남자가 슬쩍 고개를 빼꼼 내밀고 서있는 그림. 어쩌면 겉표지 보다도 더 책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다. 

처음 두 이야기까지는 약간은 낯설게 읽다가 세번째, '라인하르트 레타우'라는 작가의 [책 다리 비행 시구詩句]의 " 다리足 아래 책을 달고 날아가면 결코 혼자가 아니다!"에서 갑자기 나도 책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하루밤에 이야기 하나'라는 굳은 결심을 지키기 어려울만큼. 그러다가 '이반 클리마'의 [책-친구이자 적]에 이르면 '맞아, 맞아'하면서 가슴벅차게 안심을 하게 된다.

그림 하나에 이야기 하나. 그냥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림에서 받은 이미지를 작가가 쓴다. 어떨 땐 이해가 가고 어떨 땐 뜬금없기도 하고, 어떨 땐 차분해지기도 하고, '오르한 파묵'의 글처럼 보다가 섬뜩하기도 하고,...

크빈트 부흐츨츠의 그림에 46명의 작가 들이 각자 짤막하게 이야기를 붙인 이 책, 느림의 미학이랄까 쉬어가는 책이랄까. 한번에 쭉 읽는 책이 아니라 자기 전에 조금씩 꼭꼭 씹어 잘 삼켜야 하는 책. 그래서 때로는 적당한 포만감으로 기분좋게 잠들기도 하고, 때로는 설레임에 뒤척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 현학스러움에 잠을 설치기도 하는 그런 책.

뱀발: 가끔 글밑에 자신의 생각을 붙인 옮긴이의 지나친 친절은 확실히 마음에 안 든다. 그럴 시간에 좀더 번역을 맛깔스럽게 해 줄것이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by anita | 2008/01/24 21:04 | 이런 책, 저런 책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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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달을향한사다리 at 2008/01/28 20:38
아, 저랑 참 비슷하게 느끼셨어요^^ 저도 겉지 벗겨낸 커버가 더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Commented by anita at 2008/01/30 19:26
그지요? 이런 맛에 하드커버는 일단 겉표지부터 벗기고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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