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레레
원래 프랑스 소설에 대한 편견이 있다. 뭔가 어렵고, 난해하고 이해 불가능할거라는, 그래서 내 취향과는 맞지 않을거라는. 거기에 프랑스 스릴러? 더구나 소개글에 "고음악부터 건축, 역사, 정치 등 폭넓은 소재들을 하나로 아우르는 신종 서스펜스 스릴러". 갑자기 옛날 만득이 시리즈의 별나라 공주님 얘기가 떠오르면서 주저했지만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것, 무엇보다도 표지의 고개숙인 미소년의 분위기에 홀려서 책을 들었다(2권 표지는 더욱 고혹적이다).

파리의 아르메니아 성당에서 성가대 지휘자가 끔찍하게 살해된다. 파이프오르간 소리에 묻힌 비명소리를 남긴 채로. 마침 그 성당 사무실에 있던 전직 형사 카스단은 자신도 모르게 이 살인사건에 뛰어들게 되나, 범인이나 범행 동기를 알아내기는 커녕 사인이나 살해방법조차 알수가 없다. 수사의 시작인 희생자의 신원부터 파악하려는데 칠레인이며 이름은 빌헬름 괴츠라는 단서로 추적을 해나간다. 

평범한 지휘자라는 신분과 달리 수사를 해나갈수록 무언가 사건은 미궁에 빠져든다. 탐문수사중에 파리 시내 곳곳에서 찾아낸 소년들의 실종 사건들, 괴츠의 집에서 찾아낸 도청장치와 CD, 거기에 또다른 방향에서 독자적으로 수사를 하는 젊은 형사 볼로킨. 결국 이 두 형사는 손을 잡고 사건해결에 뛰어들게 되는데 이 둘을 비웃듯이 사건과 관련된 증언을 한 사람들이 계속 살해당한다. 그것도 참혹한 방법으로, 사건 현장에는 피로 쓴 그레고리오 알레그리의 성가곡 <미세레레>의 한 대목만 남아있고,.. 마침내 이 둘도 목숨을 위협당하며 쫓기게 된다.

처음에는 언뜻 살리에리가 떠오르면서 그냥 음악과 관련된 살인사건인줄 알았다. 누군가 천재적인 음악가에 대한 시기, 그게 아니면 악마적인 미학에 사로잡인 천재의 광기, 뭐 이런 내용이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읽다보면 칠레 피노체트 정권의 만행, 남미 독재정권의 ‘콘도르 계획’, 미국의 대외 정책, 네오 나치 세력, 프랑스 고문 기술자들.... 현대사의 부끄러운 한면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사건은 해결된다. 근데 과연 정말로 그 아이는 누구였을까?

이 책을 보면서 그레고리오의 미세레레를 찾아서 들었다. 책을 읽기 전과 다 읽은 후에. 책을 읽기전에는 그저 아름다운 보이 소프라노의 소리에 감탄했었는데, 다 읽고 나서 들었던 이 곡은 대부분의 영상들이 어두운 성당을 배경으로 해서인지, 아니면 이 책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섭다.
by anita | 2012/01/24 20:16 | 이런 책, 저런 책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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